다시 떠오는 독도 ; 독도의 역사와 명칭, 우리 독도를 지킨이야기
일본의 순시선이 독도 인근 20km까지 왔다 갔다는데 언론은 조용했고 정부 역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고 눈앞이 찡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 연설이 생각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제발 눈을 뜨고 귀를 열어라 지금의 대한민국은 조선말기 경술국치 직전의 상황이랑 다를 바가 없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 되었던 우리 땅입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입니다.
러일 전쟁은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권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한반도 침략 전쟁입니다.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의한 점령지의 권리, 나아가서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RHlxkH0b1w
독도의 역사와 명칭
대한민국땅 독에 대한 이야기다 독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겨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독도의 이름이 언제부터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상한 정권이 독도 방어 훈련도 몇 년째 안 시키고 일본 총리에게 우리나라 땅인 독도를 줄려는지는 몰라도 독도를 넘기는 순간.... 아마도... 아주 잣 되는겨....
독도의 이름 유래
독도는 신라 시대인 512년 처음으로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 지역의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이 섬이 우산도에 포함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와 독도는 '삼봉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섬이 세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는 의미에서 붙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1794년 '가지도'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데 이것은 강치라는 동물이 많이 서식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00년 대한제국의 칙령 41호로 '석도'라는 한자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1906년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독도'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독도의 역사적 기록
독도가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이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울릉도와 독도) 정벌하면서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우산국은(울릉도와 독도) 918년 고려가 건국되면서 고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고려는 울릉도 주민을 이주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울릉도와 본국사이의 풍랑으로 인한 사고로 중앙 정부에서 관리들을 울릉도로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독도에 관한 여러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GOD 세종의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1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울릉도에 개척민이 증가하고 일본 놈들도 많이 들어오게 되자 대한제국 정보는 1900년에 독도를 울릉도가 관할하도록 하는 칙령을 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05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새퀴들은 독도의 군사적 가치를 알고 무단으로 독도를 지네나라에 편입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일본세퀴들은 당시 독도가 무주지라는 주장을 하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독도를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지네 열도의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게 된다.
이러면서 일본 세퀴들은 대한제국에 어떠한 협의나 사전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깡을 치는 조치를 취한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해 쪽바리 세퀴들에 항의할 수 없는 아주 스벌 잣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세종실록지리 (世宗實錄地理志)-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9868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40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 이후
쪽바리들이 아주 미쳐 날뛰던 와중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미국을 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으로 초대를 하게 되면서 2차 대전이 끝나는 와중에도 정신 못 차리고 끝까지 태평양 전쟁으로 이름까지 갈아타면서 지네들 본토에 핵 미사일 2방을 맞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고 나서야 항복을 선언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대략 3년간 미국정의 아래에 있던 대한민국은 48년 8월 15일에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의 영토라는 결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되었다.
일본은 여전히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이는 쪽바리들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결과로 침탈된 독도에 대해 우리가 완전한 독립이 되었음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쪽바리들의 미친 행위에 대한 할리우드의 답변 - 진주만
https://www.youtube.com/watch?v=I6b3cjKUgLw
쪽바리들의 미친 행위에 대한 할리우드의 답변 - 미드웨이
https://www.youtube.com/watch?v=vdfdBtv0beY
쪽바리들의 미친행위에 대한 헐리우드의 답변 - 오펜하이머
https://www.youtube.com/watch?v=ies5g4cK2xI
독도를 지켜낸 인물들
블로그 맨 위에 독도에 관한 연설을 하신 노무현 대통령님의 연설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독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은 안용복 장군이다.
1693년 조선 후기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일본 어민과 마주치게 된다. 쪽바리 어부새퀴들이 울릉도까지 침범하면서 노략질을 하자 안용복은 그들에게 다가가 혼꾸녕을 내주게 된다. 하지만 쪽수가 부족했는지 안용복은 일본으로 잡혀가게 된다. 그러나 안용복은 쫄지 않고 쪽바리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더 확고히 하게 된다.
당시 일본의 막부(일본을 지배하던 군사정권)에서 안용복은 당당하게 항의하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이며, 자신을 납치한 처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안용복의 납치 사건으로 조선 조정은 대마도를 통해 일본 막부와 이 문제에 대해 교섭을 하게 되는데 결국엔 일본의 막부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땅이 아니므로 일본 어민들에게 울릉도와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금지하겠는 문서를 안용복에게 쥐어 주며 안용복을 성대하게 대접하고 대마도를 거쳐 조선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1696년(숙종 22년)에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하러 배를 타고 떠난다. 그는 쪽바리 세퀴들이 또 고기를 잡고 있을꺼라 예상 했고 역시나 울릉도로 가보니 쪽바리 세퀴들이 고기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 안용복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왜 또 조선의 바다를 침범하여 불법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인가' 하며 호통을 치게 되는데 안용복의 호통에 놀란 쪽바리 어부들은 배를 돌려 도망을 가고 우리의 안용복은 도망가는 쪽바리를 쫓아 독도까지 가게 된다. 이에 빡이 칠대로 친 안용복은 일본의 돗토리현에 가서 그곳의 수령을 만나 자신이 울릉도를 관리 감독하는 관리라고 일단 구라를 치고 난 후 일본 돗토리현의 수령에게 사과를 받기까지 한다. (역시 조선의 사기 스킬)
이때 안용복은 조선팔도지도를 가지고 와 보여주면서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에 속한 섬이라는 것을 쪽바리에게 설명하고 확인을 받아 오기까지 하였다. 이 당시엔 이미 일본의 중앙정부인 막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가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일본 전국에 해 놓은 상태였다.
안용복 이야기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들 교육자료로 사용된 내용도 있다.-안용복, 우리 땅 독도를 지키다-우리 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eh/view.do?levelId=eh_n0540_0010&code=
우리역사넷
<독도(경북 울릉군)>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서해에 중국 선박이 불법으로 우리 영토를 침범하여 물고기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해양 경찰은 긴급 출동하여 이들을 쫓아내고 있습
contents.history.go.kr
해방 후 독도 지킴이
1945년 해방이 되었다. 쪽바리들로 부터 해방된 대한민국은 독도를 안전하게 지킬 여력이 많이 부족했다.
1953년 울릉도 주민인 홍순칠씨는 6.25 참전 용사들과 함께 독도를 지키기 위한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하게 된다. 이들은 개인 사비로 식량과 무기를 구입, 독도를 키기 위해 힘썼다
1. 독도 영토 주권을 단절 없이 수호
-독도의용수비대 결성, 44개월간 독도 수호
-일본의 독도 불법 점령시도 6차례 저지
2. 일본 순시선의 어로활동 방해 원천 봉쇄
-우리 어민들의 독도 근해 어로 활동 보장
3. 독도에 영구표식 영구히 설치
-일본 영토표지판 설치 차단
-독도 암벽에 한국령 조각 등 우리 땅 표지
4. 정부의 독도 영토주권 강화 적극 지원
-서도에서 물골 발견, 식수원 개발
-독도 암벽에 정과 망치로 계단 설치
-동도 정상에 등대 설치, 막사 건립 참여
5. 경찰의 독도 경비대 설치의 토대 마련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경찰 특별 채용
-무기 등 장비 인계, 중단 없는 독도수호 지원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그리고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영토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소중한 우리 땅을 지켜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그 의미를 잘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독도는 우리는 정체성이며 우리의 자존심이다.
민족 반역자와 친일을 일삼는 무리들이 강탈하려 한다면 글쓰니는 이 비루한 몸뚱아리라도 바쳐 그런 일을 막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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